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시로말랑카라 가톨릭 (문단 편집) == 기원 == 시로말랑카라 가톨릭 신도들이 본래부터 가톨릭 신도였거나 시리아 정교회와 같은 교파를 믿었던 것은 아니고 고대 말부터 인도 남부 [[케랄라]] 지방에 거주하던 전통적인 [[네스토리우스파]] [[그리스도교]] 신자인(이른바 토마스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기원으로 한다. 케랄라 지역 그리스도인들의 초창기 역사는 [[말랑카라 시리아 정교회]] 문서 참조. 고대부터 네스토리우스파를 믿으며 해안가에서 향신료를 무역하던 케랄라의 그리스도인들은 대항해시대 인도 항로를 개척한 포르투갈 세력과 조우하게 되었다. 당시 강성 가톨릭 국가였던 포르투갈은 케랄라 지역의 그리스도인들이 가톨릭이 아닌 이단 종파를 믿는다고 주장하며 가톨릭으로 개종시키려하면서 상당히 갈등이 일어났는데, 이를 계기로 케랄라의 현지 그리스도인들은 친포르투갈파와 반포르투갈파로 나뉘고, 또 친포르투갈파가 반포르투갈파가 되거나 그 반대 상황도 생겨나는 등 본격적으로 여러 교파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이 중 [[교황수위권]]을 인정하되 네스토리우스파 전례(동시리아 전례)를 유지하는 그리스도교 교파는 오늘날 [[시로말라바르 가톨릭]]의 기원이 되었고, 보수파들은 교황수위권을 부정하는 대신 아예 동시리아 전례를 버리고 [[시리아 정교회]]로부터 서시리아 전례를 받아들였는데, 이들은 오늘날 [[말랑카라 시리아 정교회]]에 해당한다. 시로말랑카라 가톨릭은 바로 말랑카라 시리아 정교회에서 다시 1930년 교황수위권을 인정하는 교파가 갈라져 나온 것으로, 유럽인 선교사들이 오기 이전 이미 1910년대 [[오스만 제국]]의 [[디야르바크르]] 출신 시리아 정교회 성직자 압둘 마시 2세가 파문을 당하고 생애 말년에 케랄라로 이주하면서 교리 확립과 전례 정비에 크게 기여하였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